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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적도문학상 성인부 수필부문 윤보은 / 장려상 : 한국문협 인니지부상

1,581 2020.07.24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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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적도문학상 성인부 수필부문 윤보은 / 장려상 : 한국문협 인니지부상


8층 언니 / 윤보은


  아이가 태어나고 100일 정도가 지나 다시 자카르타에 오게 되었다. 나는 결혼 전까지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살았고 결혼한 언니가 옆에 살고 있어 가족들과 늘 함께 있었다. 출산 후 나는 그 누구도 없는 자카르타에 와서 아이와 둘이 오롯이 낮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저 인터넷을 뒤져가며 아이의 이유식을 만들고 아이와 산책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아이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과 바람 같은 것이 늘 있었지만, 사람을 만난 다는 것이 그리고 그 사람이 내 사람이 되어 나와 인연을 맺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나는 이미 수많은 인연과 인연 아닌 사람들을 통해 배웠었다.

  누군가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고 그 용기를 내기까지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결과는 무조건 성공하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나는 그 노력에 힘을 빼고 싶지 않았다. 이미 아이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늘 심신이 지쳐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연히 카페나 밴드와 같은 온라인을 통해 얼굴도 모르는 인연이 찾아오기도 했지만 지속되기 위해서는 마음도 맞고 호흡도 맞는 관계가 되어야 하기에 그렇게 그저 아는 사람의 연락처만 늘어갈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 한 분이 올린 아이의 장난감을 판매한다는 글을 보고 구매하고 싶다는 댓글을 달았다. 곧 거래가 성사되었고 아이를 안고 판매자 분의 집을 찾아갔다. 

  그 분에게는 두 아이가 있고 아이들은 내 아이보다 한참이나 큰 아이들이었다. 그분과는 육아와 관련된 대화를 하거나 여러 가지 공감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장난감을 구매하고 나오는 길에 갑자기 괜찮으면 차나 한잔 하고 가라는 그분의 그 말 한마디가 우리의 인연의 시작이 되었다. 8층 언니, 내 휴대폰에는 그렇게 저장이 되어 있었고 언니는 곧 뿔랑(Pulang, 한국으로 귀국)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 이후로도 몇 번 만나 차를 마시고 한번은 나를 언니 집으로 초대해서 점심을 차려주었다. 언니는 본인도 아이를 키워보니 아이 밥은 잘 챙겨 먹여도 정작 엄마는 못 먹는다고 말하며, 예전 자기 생각이 나서 내게 밥 한 그릇 대접 해 주고 싶었다고 했다. 

  8층 언니는 그 후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한국으로 갔다. 언니가 가고 난 후 사실은 몇 번 만나지 않았지만 언니 생각이 많이 났다. 그러면서 문득, 언니는 곧 한국으로 돌아가는 그런 상황에서 굳이 새로운 인연을 만들려고 한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을 새로 만나는 그런 것보다 신경 쓸 일이 더 많았을 테니 말이다(몇 해 전 급하게 귀국해본 경험으로 돌이켜 봤을 때 그렇다. 언니는 사람을 만나고 인연을 만들고 뭐 그런 복잡하고 생각을 많이 하며 행동을 한 게 아니었던 것 같다. 그저 선한 마음이었던 것이다. 선한 영향력! 가끔씩 그런 글들을 본다. ‘해외 나와 살면서 같은 동포끼리 서로 돕고 살아야지.’ 사실 ‘일면식 없는 사람을 내가 왜 도와야 하나.’ 라고 말하면 어르신들이 보실 때 ‘어찌 저렇게 생각을 할까?’ 하실 수 도 있겠다. 그 동안 배우고 지켜봐 온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情)이 많아 대부분 당연히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생각하며 행동하는 것 같다. 학교에서도 늘 더불어 사는 사회를 강조한다. 

  하지만 사실 30대인 나도 그리고 전부는 아니겠지만 내가 함께 일하며 만난 20대, 10대 친구들은 점점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이 더 커져가는 것이 사실인 듯하다. 아직 고작, 30년 조금 넘게 산내가 느낀 인생에서는 당연한 것은 없는 것 같다. 당연히 도와주는 것도 없고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예의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그렇게 행동하는 데에는 저마다의 사정과 생각이 있을 테니 말이다. 언니가 내게 베풀고 간 선한영향력은 나의 행동을 크게 바꿔놓았다. 우선 누군가와 인사를 하게 되거나 이야기를 하게 되면(대부분 동네에서 처음 만나는 아이 엄마들이다. 예전에는 ‘저 사람이 나와 인연이 될 수 있을까?’ 혹은 ‘심심한 내 삶에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등등 여러 생각을 하며 이야기를 했었는데 요즘 나는 그냥 자꾸 말이 많아진다. 

  나보다 더 많이 그리고 오래 인도네시아를 경험한 사람에게는 맞장구를, 처음 혹은 아이가 우리 아기보다 어려서 내게 정보가 조금 더 있는 경우에는 그 정보를 나누어주려고 한다. 누군가는 이런 나의 말과 행동이 부담 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 에게는 진짜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는 오늘도 많은 이야기를 해본다. 아주 소소한 변화이지만 내 삶에 있어서 사람을 대하는, 특히 해외에 살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또 떠나보내는 이런 삶 속에서 8층 언니가 내게 남기고 간 이 영향력은 참으로 크다. 실제로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만나는, 나의 아이의 친구이기도 하고 또 그와 동시에 내게 친구 같은 언니를 만나게 된 것도 다 8층 언니 덕분이다. 8층 언니와 ‘선한 영향력’이란 문구가 해외에서 내가 즐겁게 그리고 잘 지낼 수 있게 하는 기반이 되어주고 있다. 




<수상소감>

  엄마를 부르던 아기가 잠이 들면 드디어 길고 길었던 오늘하루도 끝이난다. 그러면서 새로운 하루가 새로운 하루라기엔 너무나 짧은 밤이지만 나는 참 많은 것을 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오늘은 나의 새로운 하루를 감사한 마음으로 이 글을 적으며 시작한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글을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두려운 일인가 시작했다. 그 두려움을 깨고 용기를 낼 수 있게 도와준 나의 남편과 존재만으로도 사랑인 나의 아들 그리고 늘 함께 해주시는 부모님들과 우리언니. 가족들의 응원에 힘을 얻어 잠시 잊고 있었던 꿈을 생각하게 되는 그런 밤이다. 상처받고, 아파하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아직도 나는 참 어렵다. 어쩌면 이런 나 스스로에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장할 수 있는 용기를 주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8층 언니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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