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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적도문학상 성인부 시부문 전현진 / 장려상 : 한국문협 인니지부상

1,524 2020.07.24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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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적도문학상 성인부 시부문 전현진 / 장려상 : 한국문협 인니지부상


남해 기행 / 이병규


들쳐 맨 짐들이 언제 무거웠던가

사뿐히 건너버린 남해대교 끝으로

무심히 자동차들 여남은대 지나고,

뭍을 뒤로 한 채 섬 아닌 섬으로 내딛은 발걸음들.


꼬불꼬불 길지 않은 해안도로 사이에 두고

신선놀음 바둑판 마냥 반듯하게 나뉜 위로

어부인지 농부인지

늙은 촌부가 가끔 들어 허리를 편다.


남해바닷길로 향해가는

차안의 사람들은 마음이 달뜨고,

바다를 따라 달리는 2차선 아스팔트 길은

이미 땅이 아닌 하늘이 된다.


어미의 팔로 새끼 담은 둥우리 감싸듯 안은

바닷물 끝자락 사이에

아늑히도 자리 잡은 조만한 섬들을

이정표 삼아

수백바퀴를 굴린 자동차들이

하나 둘 얼굴을 들이밀고.


맘 달아 먼저 달린

누군가 내뱉는

반가움의 소리들


띄엄띄엄 하늘의 섬 같은 구름들이

한 여름 햇발을 가렸다 말았다

실컷 가지고 놀다가

지친 듯 내 동댕이친 해의

토해내는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흥분을 참고 있던 맘도 흩어지고


여름이 고된 내달음질을 끝으로

잠시 숨을 돌린 새에

북녘 끝 찬 바닷물이

예까지 치달았음을 모른 채


앞 뒤 안 가리고 뛰어든 바다는

몸서리 쳐지는 차가움으로 나를 베어내고

한걸음에 놀라 뛰어 나와

어린아이 마냥 쓸어내리는 가슴.

미안한 듯, 부끄러운 듯 바다는

모래 끝 모래 끝으로 조금씩 다가와

내 발끝을 간지르며 나를 부르고,

급한 맘을 죽이고 조심스레 찾아드는

이방인의 가슴 졸이는 바다에로의 초대


스멀거리며 찾아오는 바닷가의 어둑 녘이라니

서둘러 집을 향해 돌아가는 고깃배들과

개평이라도 달라는 듯 무리지어 뒤쫓는

이름 모를 물새들 어우러져

귀가를 재촉함에

촌마을 작은 방으로 엉거주춤 숨어든다.


밤바다 향기로운 물안개 사이로

여수항의 큰 배들의 깊은 한숨소리 내뱉으면

힘겹게 치켜 뜬 포구의 가로등이

한 놈씩 두 놈씩 흘킨 눈으로 빛을 토해 낸다


저녁밥 단숨에 지어먹고 풀어헤친 맘들 속에,

어느 새 홀린 채 바다를 향한

사모의 정이던가

귀를 간지럽히는 파도와

코를 메는 짠 내에

다시 바다로 바다로.


바다를 앞에 두고,

도란도란 모여 앉아 이야기 하노라면

낯선 이들도 어느 새 백년지기, 천년지기


아직도 집을 찾지 못한

작은 배 하나가 뱃고동 소리 길게 울리며

어미 찾아 멀리 멀리서 다가오는 소리와 함께

바다로 뻗은 해안도로 가로등이

제풀에 꺾여 꾸벅일 때 까지도

바다와 사람이, 사람과 사람이 나누는

말들과 웃음은 끝이 없다.




<수상소감>

  갑작스러운 수상 소식이 힘겨운 월요일 아침을 상쾌하게 해주네요. 해당 시에 나와 있는 남해를 다녀온 게 벌써 10년이 넘었고, 그 감정들을 추스려서 간략하게 글을 써놓고 덮어둔 게 벌써 7~8년은 된듯합니다. 오래도 묵혀 두었네요. 한때는 글을 읽고, 쓰고 그것들을 공유하는 일련의 작업들이 내가 이루지 못했던 소년 시절의 꿈을 이뤄내 가는 과정들이라고 생각하며 시든 소설이든 미친 듯이 읽고 또 써내려 갔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나의 글쓰기에 삶의 무게가 더해지고 분주한 일상이 버무려지면서 어느 샌가 야금야금 글쓰기에 할애할 시간들을 빼앗겼고 그 시간들은 온라인상의 갖은 SNS들로 치환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나는 글쓰기에 재능이 있는가? 내 글들을 읽어주고 그것을 받아들여 주는 사람들이 있는가? 라는 의문들이 내 글쓰기의 처음과 끝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닌 것을 숨길 수 없고 결국 이러한 의문들 때문에 서서히 글쓰기를 버려 나갔던 것에 대해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인생의 주요한 변곡점에서 제가 선택한 길은 항상 글쓰기의 길보다는 세속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선택되었고, 지금의 나는 글쓰기와는 완벽하게 멀리와 버린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나를 아는 사람들이 동 수상을 알면 많이 놀랄 것 같네요. 저에게도 글쓰기는 가끔 허공에 내뱉는 푸념 같은 것이었습니다. 잠깐의 머무름을 위해 자카르타를 와서 정말 우연치 않게 인니 문협의 적도 문학상 공모를 보게 되었습니다. 가슴은 다시 뛰었고, 머리는 한번 내 글쓰기를 평가 받아보자는 의지로 가득했습니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이번 수상은 문학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을 잃고 있던 나에게 앞으로 더 넓은 세상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보라는 응원으로 느껴집니다.  생애 처음 문학상 수상으로 나만의 공간에서 웅얼거림이라는 껍데기를 벗게 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앞으로 나의 시간들을 글쓰기에 조금 더 투자하고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인도네시아 문인협회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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