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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적도문학상 성인부 수필부문 하승창 / 최우수상 : 인니한인회장상

1,928 2020.07.24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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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적도문학상 성인부 수필부문 하승창 / 최우수상 : 인니한인회장상


'Ya, Udah' / 하승창


  "Kenapa? What's wrong?" 낮잠을 자다 깬 아내의 고통스러운 신음소리에 덩달아 깨어난 내가 놀라 물었다.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아내의 창백한 얼굴을 보면서 나는 불행한 사태가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마침 주말이라 내가 아내와 함께 있음을 다행으로 생각하면서 부랴부랴 아내를 차에 태우고 근처의 산부인과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조수석에 앉아 이를 악문 채 복통을 참고 있는 아내를 보면서 나는 괜찮을 거라고, 조금만 참으라고 얘기해 주었지만, 사실 이 복통이 의미하는 불길한 예감은 이미 우리 두 사람의 마음을 먹구름처럼 뒤덮고 있었다. 병원에서 우리를 맞이한 의사의 모습은 화려했다. 번쩍이는 귀걸이와 목걸이, 그리고 양 손 열 손가락에 모두 빛나는 반지를 끼고 있는 그 의사는, 그녀가 걸친 새하얀 가운만 아니었다면 디너 파티에 참석한 상류층 귀부인이라 보아도 될 만한 외모였다. 초음파 검사기를 만지는 귀부인의 얼굴이, 검사대에 누운 슬픈 아내의 얼굴과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흑백 모니터에 비친 화면속에는 바로 몇일 전 까지만 해도 또렷이 보였던 작은 콩알 대신, 칠흑처럼 검은 바탕위에 희끄무레한 잿빛 흔적들 만이 새털구름처럼 드문드문 흩어져 있었다.  


   "유산입니다. 소파수술 해야 하니 입원하시죠" 아름다운 귀부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메마르고 차가웠던 그 말. 이미 나조차도 뭔가 나쁜 일이 벌어졌음을 느끼고 있었을 정도인데, 여자이자 엄마인 내 아내의 예감이야 오죽했을 지 알고 있었지만 차마 입 밖에 낼 수 없었던, 그러나 이번만은 제발 틀리기를 염원했던 그 예감이 사실로 확인된 순간, 아내는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아내는 수술 대신 하루간 입원실에서 몸조리만 하였고, 입원하는 날 제시 받은 엄청난 수술비를 거부했던 우리에게 다음날 대폭 할인된 수술비를 제안하는 귀부인을 뒤로 한 채 우리는 퇴원을 하였다. 아내와 나는 81년생 동갑이다. 자카르타에서 만나 1년간 연애 후 2015년도 봄에 결혼을 했다. 다소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되어서인지 나도 아내도 가족 계획에 적극적이었고, 축복 속에 얻었던 허니문 베이비는 그렇게 3개월만에 우리 부부를 떠났다. 다행히 아내는 곧 건강을 회복하였고, 그 후로 얼마 동안의 슬픔을 이겨내고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나는 몰랐다. 우리에게 닥칠 고통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더 이상 아이가 들어서지를 않는 것이다.

 

  우리는 초조했다. 자카르타에서 제일 유명한 산부인과 의사, 그 중에서도 특히 불임치료 전문 의사와 일주일에 한 번 상담을 기본으로 하여, 주기적으로 혈액 검사, 호르몬 검사 등 각종 검사를 받고 아내의 몸 상태를 체크했다. 아내는 매일 한 웅큼 분량의 약을 처방 받아 먹었고, 내 부모님이 한국에서 용한 의원을 찾아 지어 보내주신 한약도 먹었다. 매일 체온계로 체온을 기록해서 배란일을 정확히 예측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도 그 때 처음 알았다. 내가 밖에서 저녁 약속이 있는 날과 아내의 배란일이 겹치는 경우, 나는 먼저 집에 와서 아내와 엄숙히 의식을 치르고 다시 약속 장소에 나가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매달 화장실 휴지통에 버려지는 한 줄 짜리 테스트기를 보며 우리는 지쳐갔다. 이러다 영영 아이를 갖지 못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우리의 정신을 힘들게 했고, 매일 매주 계속되는 약품과 주사와 각종 검사들이 우리의 육체를 피폐하게 했다. 결국 유산 후 딱 1년이 되던 때, 나는 아내와 마주 앉아 이야기했다. "우리 서로 사랑하며 지내다 보면 언젠가는 아이가 생길 것이고, 혹시 생기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른 방법을 찾아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야. 그러니 이제 그만 놓아버리자. 우리 다시 신혼때로 돌아가서 마음 편히 사랑하며 살자." 나의 제안에 아내는 잠시 망설였지만 동의를 해 주었고, 그 날 이후 우리는 그간 해왔던 처방들을 모두 중단했다. 그리고 두 달 후, 아내는 눈물이 글썽이는 빨간 눈으로 나에게 빨간 두 줄이 선명한 테스트기를 보여주었다.


  "Ya Udah" 내가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을 가지고 심각하게 받아들이거나 화를 낼 때마다 아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다. 예고도 없이 분데란 HI 로터리를 막은 경찰 때문에 차가 막혀 내가 짜증을 낼 때에도, 마트 계산대 앞에 늘어선 긴 줄을 두고 꾸물대는 점원을 보며 내가 화를 낼 때에도, 집사람은 "Iya Udah" 라고 말한다. 이 짧은 문장 속에는 다양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그래 더 말해봤자 소용없으니 너 좋을 대로 해라' 라는 의미도 있지만, '이미 일이 이렇게 된 걸 어떻게 하겠느냐, 그러니 어쩔 수 없다' 또는 '내가 어찌한다고 바꿀 수 없는 일이니 받아들이자' 라는, 인도네시아 인들의 낙천적인 사고 방식 혹은 도가(道家)적인 무위(無爲)의 이치가 담겨 있는 문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돌이켜보면 내가 인생을 살며 저질러 왔던 많은 실수들, 그리고 그것들로 인해 겪어야만 했던 실패들은 바로 이런 마음가짐의 부재로 인해 일어났던 것이 아니었을?. 성공이든, 돈이든, 사랑이든, 집착을 하면 할수록 그것은 오히려 그 사람에게서 멀어진다고 하였다. 


  마치 더욱 갈망하고 더 많이 움켜쥐려 할 수록 손 밖으로 더 많이 빠져나가 버리는 모래알처럼. 옛 말에 무슨 일이든 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충실히 임하되, 즐기는 마음으로 평정심을 유지할 때 비로소 행복과 성공은 소리없이 찾아온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Ya Udah' 라는 말은 체념과 포기의 문장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의 여유로움과 평정심을 부르는, '놓아 버림'의 미학이 함축된 주문이다. 첫 아이 출산 후 별다른 노력없이 아내는 곧바로 둘째를 임신하였다. 평정심을 되찾은 덕분이었을까, 지금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그러고 보면 언제나 'Ya Udah' 를 말하던 아내가 1년 동안 몸 고생, 마음 고생을 했던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절박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평정심을 잃고 조급한 마음을 품게 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인가보다. 여유로움과 평정심을 부르는 한 마디 주문. 주문이 검은 밤하늘을 수놓은 별처럼 내 마음에 아로새겨질 때까지, 나는 오늘도 조급한 마음이 들 때마다 소리 내어 말해본다.   "Ya Udah" 




<수상소감>

  생애 첫 문학작품 응모에 이처럼 큰 상을 받게 되어 대단히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부자유가 일상이 되어버린 갑갑한 시절이라, 펜 끝에서나마 얻을 수 있는 자유로움이 더 크고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올해는 불혹이 된 제가 처음으로 겪는 일들이 유난히도 많은 해입니다. 며칠 전에는 큰 비가 내렸습니다. 바짝 마른 7월 한여름, 지붕을 두들기는 콩 볶는 소리가 빗소리인 줄을 깨닫는 데에는 한참이 걸렸습니다. '불혹'이 아니라 '의혹'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때가 아닌가 합니다.

   "사람을 멈추게 하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체념이고, 사람을 나아가게 하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의지이다" 라는 책 구절이 있습니다. 그러나 작금 펼쳐지고 있는 상황은 인간의 그 어떤 의지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 버리려는 듯, 앞이 까마득한 절망과 체념 속으로 우리를 몰아넣고 있습니다. 인간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지만, 과연 이 끝에 어떤 희망이 있을까 하는 물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저의 졸작 'Ya Udah' 는, 거듭된 노력과 절망의 끝에 '놓아 버림'으로서 희망에 도달할 수 있었던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글입니다. 다만 신중함과 우유부단의 사이에 미묘하고도 중요한 차이가 존재하듯, '체념'과 '놓아 버림'의 사이에도 분명히 존재하는 무언가 있을 것입니다. 그 해답을 찾아 나가는 우리의 여정에, 그리고 우리 의지의 한계를 시험 받는 이 시절에 끝이 있기를 바라며, 한국 문학의 발전을 위해 애쓰시는 한국문인협회 인도네시아지부 여러분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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